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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기록

  • 하룻밤의 프라하

    하룻밤의 프라하

    지금 사는 곳에서 국경 하나를 넘으면 생각보다 금세 프라하에 닿는다. 카프카의 도시. 아름답다고 소문난 그곳을 언젠가는 방문해 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여유가 생길 만하면 다른 일정이 들어찼다.

    그러다 여름이 다가올 무렵,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 소식을 들었다. 아날로그 IMAX 70mm를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상영관이 프라하에 있었다. 드디어 떠날 때가 왔다는 신호였다. 영화의 인기가 상당해서 상영 한 달 전이었는데도 좋은 좌석은 거의 없었다. 날짜를 넘겨보다 일요일 낮 시간에 중앙 좌측 두 자리가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예매했다. 그렇다면 전날 미리 도착해 짧게나마 프라하 도심을 구경하면 좋을 것 같았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겨 여행 자체가 취소될까봐 숙소 예약은 출발 일주일 전까지 미뤘다. 영화 한 편을 보기 위해 국경을 넘는, 우리만의 작은 오디세이를 펼치기로 했다.

    7월의 토요일 아침, 우리는 프라하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2층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니 커다란 배를 타고 프라하라는 섬으로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구글 지도를 켜 숙소와 기차역, 몇몇 카페와 서점, 미술관, 박물관을 저장했다. 1박 2일 동안 이 장소를 모두 다 둘러볼 욕심은 없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나는 것보다는 한 번쯤 지도를 훑어본 뒤, 기회와 우연이 닿는 쪽으로 흘러가 보는 편을 좋아한다.

    세 시간 반가량 아스팔트 바다를 항해한 끝에 프라하 중앙역에 도착했다. 숙소까지는 걸어서 삼십 분. 배낭은 제법 무거웠지만 겨우 이틀 머물다 떠날 도시라고 생각하니 한 걸음이라도 더 걷고 싶었다.

    이번에는 카메라도 제대로 챙겨왔다. 최근에는 컴팩트 카메라만 들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마르코 삼촌이 주신 28-135mm 캐논 렌즈를 처음으로 후지필름 카메라에 달았다. 낯선 도시의 한 순간을 바짝 당겨 뷰파인더 안에서 들여다보는 일. 한동안 잊고 있던 즐거움이었다. 예전에는 단렌즈 3개를 주렁주렁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짧았다. 렌즈를 바꾸는 시간도, 사진 한 장을 위해 혼자 멈춰 서 있는 시간도 줄여야 했다. 누군가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는 내가 멈추면 상대방의 시간도 같이 멈춘다. 이번에는 가능한 한 함께 걷고, 함께 보면서 사진도 담아내고 싶었다.

    프라하의 첫 맛

    맥주로 유명한 나라에 살면서도 우리는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독일에는 무알코올 맥주도 제법 맛있는 것이 많다. 이런 생활은 오히려 술을 마셔야 할 날에 빛을 발한다. 마셔야 할 이유가 생겼을 때 별다른 죄책감 없이 자물쇠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체코는 1인당 맥주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고 알려져 있으니 그 흐름에 따라 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독일 친구가 추천해 준 정육점 겸 식당 나세마소(Naśe maso).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들러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미 유명한 곳인지 키오스크 앞에는 관광객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마침내 자리를 잡고 수제 버거와 탭에서 갓 따른 맥주를 앞에 두었다. 고기도 우리에게는 술과 비슷하다. 평소에는 가능한 한 적게 먹지만, 미식이 삶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완전히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가끔 규칙을 느슨하게 한다. 텅 빈 위장으로 육즙 가득한 버거를 베어 물고 고소한 풍미의 맥주를 들이켰다. 고기와 맥주가 뱃속에서 열정적인 폴카를 추기 시작했다.

    고열량의 에너지를 충전한 우리는 구시가지의 중세 골목을 지나 카를교를 건넜다. 체크인 시간인 오후 세 시에 맞춰 숙소에 도착했다. 거리 쪽으로 난 창문이 있는 아늑한 방이었다. 배낭만 내려놓고 곧장 다시 밖으로 나왔다. 걷다 보니 거리 곳곳에서 굴뚝 모양의 빵, 트르델니크를 팔고 있었다. 크루아상 정도의 크기를 예상했는데 아이스크림까지 얹혀 나온 것은 작은 횃불만 했다. 하나만 사서 나눠 먹었어도 충분했을 텐데, 우리는 중세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걷듯 거대한 트르델니크를 들고 계속 걸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다 먹지는 못했다. 단맛에 달려드는 벌들에게 나머지를 내어주었다. 자칫하면 첫 끼와 첫 디저트가 그날의 마지막 음식이 될 뻔했다. 소화시키려면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우연히 닿은 두 권의 책

    인파를 빠져나와 비교적 한적한 말라스트라나 골목을 걷는데, 눈앞에 근사한 책방이 나타났다. 지도에 저장해 두었던 셰익스피어 앤 손즈(Shakespeare and Sons)였다. 애써 찾지 않았는데 가장 기대했던 장소가 먼저 나를 찾아온 기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오래된 집의 거실과 주방을 모조리 책장으로 바꾸어놓은 듯한 공간이 펼쳐졌다. 나는 카페든 서점이든 박물관이든 말끔하고 세련된 곳보다 누군가 오래 살다 간 집처럼 느껴지는 공간에 더 쉽게 마음을 내준다.

    지하로 내려가자 예술, 사진, 건축, 만화 등 더 많은 카테고리의 책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1인용 소파에 앉아 책 속에 잠긴 이들을 램프 불빛이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 가장자리가 닳은 소파, 책이 폭발하듯 쌓여있는 책상. 이곳에서만 반나절을 보내도 모자랄 것 같았다. 수많은 책 사이에서 존 버거의 <The Moment of Cubism>(Verso, 2026)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Ways of Curating>(Penguin Books, 2015)을 발견했다. 프라하의 큐비즘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었고, 보는 법과 고르는 법에 관한 책이라면 지금의 작업에도 무언가를 남겨줄 것 같았다.

    898코루나, 약 37유로. 두 사람이 배부른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돈이었다. 그래도 공부하고 싶은 텍스트이기도 했고, 이런 서점이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보태었다. 함께 받은 노란색 책갈피까지 마음에 들었다. 단 하루뿐인 프라하. 책방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접고, 흰 표지의 두 책을 조심스럽게 가방에 넣었다. 지나고 보니 무리해서 책을 구매했던 게 참 잘한 선택이었다.

    사계절이 지나간 저녁

    열의에 찬 걸음이 저녁까지 이어지자 어디든 앉아 쉬고 싶어졌다. 거대한 트르델니크 덕분인지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다. 적당하게 맥주나 한 잔 마시기로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우 메드비드쿠 브루어리(Pivovar U Medvídků)였다. ‘1466’이라는 숫자의 무게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오랜 세월 동안 양조장에서 맥주홀로, 카바레로, 사회주의 시기에 잠시 국가 소유가 되었다가 다시 원래 주인을 되찾으며 시대의 변화를 통과한 건물이었다. 한동안 끊겼던 양조의 전통도 2004년경에 소규모 양조장이 다시 들어서면서 이어지고 있었다.

    한 종류만 고르기는 아쉬워 테이스팅 세트를 주문했다. 잠시 후 네 잔의 작은 맥주가 나란히 테이블 위에 놓였다. 첫 두 잔은 청량하고 활기찼다. 뒤의 두 잔은 갈수록 맛은 짙고 묵직해졌다. 봄에서 여름으로, 그리고 가을과 겨울로 건너가는 것 같았다.

    우리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그 계절과 관계된 단어를 동시에 외치기는 게임을 하기로 했다. 함께 보낸 시간에서 나온 말도 있었고, 그 계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엉뚱한 인상도 서슴없이 뱉었다. 겨울맛 맥주의 마지막 한 모금을 앞두고 외친 나의 마지막 문장은 “Der Arbeit ist Schnee!(일이 눈처럼 쌓여있다!)”였다. 네 개의 계절이 짧은 시간 안에 한꺼번에 지나가자 취기가 빨리 올라왔다.

    찰스 스트릭랜드의 마지막 벽화

    어둠이 내린 프라하는 낮과 다른 도시가 되었다. 프라하에서 맞는 첫 밤이면서 동시에 마지막 밤이었다. 남은 힘을 끌어모아 더 탐험해 보기로 했다. 프라하의 맥주 맛에 조금씩 매료되고 있던 우리는 우연히 사람들이 붐비는 바를 발견했다. Bar IV. Budvar 33 맥주를 주문하자 낮고 배가 볼록한 반 리터짜리 맥주잔 풀리트르에 담겨 나왔다. 밝은 라거였지만 쌉싸름한 맛이 선명했다. 방 한쪽에는 열대 식물이 가득한 벽화가 있었다. 어두운 조명 아래 그 그림을 바라보다가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가 생각났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타히티에서 망가져가는 몸으로 완성한 마지막 벽화. 물론 내가 보고 있는 그림과 소설 속 그림은 많이 다르겠지만, 오랜만에 알코올 기운이 스며든 머릿속에서 문학적인 상상을 발휘하기에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린 카프카가 사진관에서 촬영했다던 야자잎이 무성한 배경도 이와 비슷했을까. 우리는 벽화를 마주한 채 맥주를 마시며 겨울에 떠날 여행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계획과 아이디어를 떠올리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공간은 없었을 것 같다.

    오래된 서재와 마지막 맥주

    마지막 산책길, 맞은 편 건물에 오래된 책들이 잔뜩 꽂힌 서재가 보였다. 작은 도서관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갔는데 매력적인 바였다. 카페 클럽 미센스카(Café Club Míšeňská). 책과 함께하는 바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영업 종료까지 삼십 분 정도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마지막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출구 가까운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빈티지 가구와 식물, 책들이 뒤섞여 있었다. 오래된 타자기 곁에 맥주잔을 내려놓고 체코어 고서를 하나씩 꺼내 보았다. 한 문장도 읽을 수 없었지만 오래된 종이를 만지고 활자와 장정의 구성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여행이 끝난 뒤 이 건물의 과거를 찾아보았다. 한때 양봉장이 있었고, 오랜 세월 한 가문의 소유 아래 비누와 향수를 만들던 곳이었다. 지금은 2016년부터 카페로 운영을 시작해 지하실은 여러 공연이 열리는 작은 클럽으로 쓰이며 지역 문화와 사람들을 엮는 살롱이 되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프라하에서는 카프카를 제대로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갈 것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대신 문학적인 기운을 도시 곳곳에서 긁어모으고 있었으니까. 다음에 프라하에 온다면 미센스카에는 낮에 다시 와보고 싶다. 그때는 맥주 대신 커피를 주문해 봐야겠다.

    고요한 아침

    다행히 숙취는 없었다. 포근하고 조용한 방에서 눈을 떴다. 부스럭거리는 이불을 조심스레 빠져나와 물을 한 모금을 마셨다. 전날 산 두 권의 책과 일기장을 챙겨 창가에 앉았다. 거리는 아직 조용했고, 이따금씩 자동차가 한 대씩 지나갔다. 누군가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혼자 읽고 쓰는 시간을 얻는 일은 귀하다. 독서와 글쓰기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혼자가 되어야 의미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삼십 분, 길어야 한 시간 정도는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이 들어오는 창가에 웅크리고 앉아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몇 장을 더 읽다가 문득 쓰고 싶은 말이 생각이 나 일기장을 펼쳤다. 전날의 여정을 복기하는 간단한 기록이었다. 다 쓰고 다시 읽어보니 가장 길게 쓴 건 카메라로 제대로 사진을 찍은 기쁨과 우연히 발견한 서점에서 두 권의 책을 사게 된 이야기였다. 어쩔 수 없이 사진과 텍스트는 나의 오래된 원천인 모양이다. 일기장을 덮고, 책을 다시 배낭에 넣었다.

    호텔 체크아웃. 다시 무거운 가방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카를교를 건너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자 작은 중정이 나타났다. 수백 년 전에는 몰타 기사단 수도회 건물 일부였던 공간에 지금은 L4 Cafe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방을 건물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머리 위로는 하늘이 열려 있었다. 바깥이면서 안쪽이고, 도시의 소음은 한 겹 얇아져 있었다. 카푸치노와 케이크로 프라하의 아침을 열었다.

    필름 위의 오디세이

    영화가 상영될 시네마 시티 플로라(Cinema City Flora, Palac Flora)는 도심 동쪽에 있다. 트램을 타고 삼십 분 남짓 이동했다. 창문이라는 직사각형 프레임 안에서 프라하의 건물과 사람과 가로수가 끊임없이 들어왔다가 빠져나갔다. 쇼핑센터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마침내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붉은 좌석들의 물결을 지나 처음 보는 IMAX 70mm 스크린 앞에 앉았다. 카메라의 뷰파인더에서, 일기장 페이지로, 중정의 건물 사이로 보이는 네모난 하늘에서 이제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였던 거대한 스크린으로 시선을 두었다. 빛이 거대한 필름을 한 겹씩 통과해 사방으로 시원하게 트인 스크린에 경이로운 장면들을 풀어냈다. 그동안 봐왔던 스크린이 실눈을 뜨고 있었다면, 70mm 스크린에서는 눈을 활짝 뜨고 숨겨진 장면 모두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칼립소가 있는 오기기아 섬에서 조금씩 기억을 떠올리는 오디세우스를 따라 그가 집으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을 함께했다.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서 상징적인 목소리가 된 제임스 블레이크의 노래에는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영화가 끝나고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면서 마르코가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우리는 영화의 엔딩곡이었던 “When I’m Home”을 반복해서 들으며 소감을 나누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시간까지 4시간 정도가 남았다. 블타바강변에 있는 댄싱 하우스 쪽으로 가서 프라하 중앙역으로 마지막 산책을 즐겼다.

    레겐스부르크로 돌아가는 저녁 버스 안에서 새로 산 책을 읽다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단 하룻밤의 프라하. 구글 지도에 저장해 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는 가지도 못했는데, 우연히 마주한 짧은 순간에도 예술적인 시간을 누릴 수 있어 놀라웠다. 책방 지하의 보물들, 사계절을 지나던 네 잔의 맥주, 그리고 책들이 가득한 바, 호텔 창가에서 펼친 일기장, 황홀했던 70mm 속 풍경들. 우리는 다행히 오디세우스보다 훨씬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충동에 사로잡힌 나는 그날 새벽 2시까지 이것저것 공부를 요란하게 하다가 잠이 들었다. 책과 예술로 뒤덮인 삶을 꿈꾸는 나에게, 프라하에서 본 장면들이 자꾸만 속삭였다. 그 꿈은 실제로 존재해. 그러니 어서 다시 한번 더 이곳으로 와서 마음껏 꿈에 사로잡혀 있어보라고.

    *다른 언어로 읽기:

  • 작품으로 자라는 일기

    작품으로 자라는 일기

    작년부터 일기장을 ‘출판’한다는 태도로 채워 나가고 있다. 여러 인쇄 매체에서 오려낸 글자와 이미지, 직접 쓰고 그린 글과 그림, 마스킹테이프와 스티커를 활용하고 있다. 그 과정은 즉흥 연주를 그대로 녹음하는 일과 비슷하다. 레이아웃에 대한 근사한 계획보다는 일단 손이 먼저 움직이고, 그날의 리듬이 페이지 위에 남는다. 매일 조금씩 내 삶을 주제로 한 매거진을 실시간으로 편집한다는 감각과 함께, 첫 번째 에디션은 실제로 2페이지씩 스캔해 외부에 공개하기도 했다.

    첫 번째 에디션을 끝낸 무렵은 엄마를 떠나보내고 보름이 지난 후였다. 노트 전체 페이지의 10% 정도가 남은 상황이었지만, 그 후로 두 달 동안 일기를 전혀 쓰지 못했다.

    어느 날 책방을 산책하다가 무척 끌리는 노트를 발견했는데, 인젤 출판사(Insel-Bücherei)에서 나온 노티츠부흐(Notizbuch, 노트) 시리즈였다. 한국에서 산 원래 일기장보다 크기가 작고 가격은 5배나 비쌌지만, 평소 좋아하던 인젤 출판사 양장 책과 꼭 닮은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한 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같은 규격의 일기장을 계속 쌓아가기에도 적절해 보였다. 새 노트가 주는 기운 덕분에 4월 말부터는 일기를 다시 쓸 수 있었다. 중단된 리듬을 잇기 위해 애썼다. 노트를 펼칠 때마다 직접 책을 쓰는 기분이 들어서 더욱 몰입이 잘 되었다.

    사실 본격적으로 공개가 가능한 일기를 쓰기로 마음 먹기 전에, 한국에서 열린 작은 북페어 행사에서 일기장을 전시한 적이 있었다. 일기 기록을 기반으로 독립출판한 내 첫 책 <사적인 파라다이스>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원본 일기장이 책의 진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아 함께 들고 갔다. 부스를 방문한 사람들은 책뿐만 아니라 일기장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타인의 일기장을 본다는 약간의 죄책감과 은근한 호기심이 섞여 사람들이 페이지를 조심스레 넘기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그 후로 아트북 콘셉트의 <SAPA(Stacked and Piled Attempts)> 시리즈를 만들었을 때는 책방에 전시를 위해 아예 한달 가까이 일기장을 두고 오기도 했다. 그동안 사진 전시는 여러 번 해봤지만, 현장에 나 없이 일기장만 두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타인에게 사적인 기록을 공개하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몇해 전 일기장이었고, 중요한 내용은 이미 열일곱 살 때 발명한 비밀 언어로 작성한 상태라 부담이 덜했다.

    독일에 와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의 일기장은 미스테리한 물건 그 자체였다. 그들에게 일기장을 보여주면 대부분 한국어로 쓰여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 한 장 한 장을 마치 그림을 감상하듯 오래 바라보았다. 읽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타인의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대하는 태도를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

    이렇게 일기를 공개하는 몇 번의 경험 끝에 깨달았다. 일기장은 나날의 기록이라는 기능을 담고 있지만,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오래 지속해 온 작품과도 같다는 것. 화가에게는 캔버스에 그린 그림이, 작가에게는 소설 한 권이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이듯 나에게는 일기장이 시간을 머금고 나의 세계를 표현하는 예술 그자체가 된다. 손글씨의 리듬, 종이를 오려 붙인 콜라주, 사진과 드로잉, 메모와 여백. 그 모든 요소가 하나의 시각 언어가 되어 글의 내용 자체보다 먼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일기장으로도 실제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와 비슷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후, 나는 본격적으로 일기를 세상에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나는 일기를 하루의 메모가 아니라, 한 페이지씩 완성해 가는 아트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최근 열린 페스티벌의 공간에서 첫 번째 에디션 일기장과 사진, 메모를 함께 전시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어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페이지 앞에 머물렀다. 그림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콜라주한 요소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드문드문 쓰여있는 독일어 문장을 찾아 여러 페이지를 탐색해 읽기도 했다. 내가 오랫동안 생성해 온 것은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라, 글과 이미지, 시간이 한데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시각적 작업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앞으로도 나는 일기를 단순히 하루를 기록하는 도구로만 남겨 두고 싶지 않다. 일기는 내 작업의 출발점이자 가장 오래 이어질 매체가 될 것이다. 원본 일기장을 꾸준히 아카이빙하는 한편, 그 기록을 바탕으로 새로운 책들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어떤 페이지는 원래의 형태로 남고, 어떤 페이지는 에세이와 아트북으로 다시 엮이며 또 다른 작품이 된다. 기록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다른 형태로 자라난다.

    내가 만들고 싶은 것은 책 한 권이 아니다. 한 사람의 삶에서 비롯된 기록들이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며,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일이다. 그 첫 페이지는 이미 펼쳐졌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오늘의 페이지를 완성하고, 내일 다시 다음 페이지를 펼치는 것.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삶을 출판해 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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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적의 한복판에서

    기적의 한복판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이어지는 하루를 살다 보면,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 삶을 통째로 바꿔 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거나, 골치를 썩던 일이 마침내 해결되거나 하는 것들. 그런 극적인 순간은 우리 삶에서 드물게 일어난다. 그러나 특별한 일이 일어나는 시간을 하염없이 늘어뜨리면, 평범한 일상과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경계선이 아주 희미해진 무지개와 같이. 그래서 우리는 기적 속을 지나가면서도, 그것이 기적인 줄 모른 채 하루를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33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독일로 오셨다. 내가 사는 곳에 처음 오시는 만큼, 여기 계실 동안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그중에는 아빠의 오랜 소원이었던 돌로미티 트래킹도 있었다. 나는 원래 계획을 세워 떠나는 여행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모험과 우연한 발견에 시간을 던져놓는 쪽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이건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아빠의 좋은 시간을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에, 시간이 날 때마다 더 나은 트레킹 루트와 동선을 찾아보았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여행 짐 싸기는 언제나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가방 무게를 최대한 줄이면서도 실용적이고 영민한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새벽 두 시에 짐 싸기를 겨우 끝내고 다음날 아침 뮌헨 중앙역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첫 기차부터 계획이 죄다 틀어졌다. 기차는 연착되었고, 예약은 줄줄이 꼬였으며, 독일 신분증은 가져 왔으나 여권이 들어 있는 가방을 마지막에 바꿔 챙긴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마음을 겨우 다잡고 할 수 있는 모든 기지를 발휘했다. 친구들이 여권을 가지고 뮌헨으로 와 주었고, 출발 10초 전 브레네로로 향하는 열차에 오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차가 연착되지 않았다면 마지막 직행 열차를 타지 못했을 것이다.

    기차와 버스를 몇 번 더 타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밤 9시가 다 되어 있었다.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짧은 3박 4일 여행에서 숙소에 도착하는 데만 꼬박 열두 시간을 쓴 셈이다. 패닉에 사색이 된 나를 아빠는 연신 “괜찮다, 별일 아니다”며 진정시켜 주셨다. 아빠께 너무 죄송했다. 아빠가 더 힘드셨을 텐데,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셨다. 이미 지나간 일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남은 시간만큼은 잘 보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아빠가 잠드신 밤. 비가 더욱 거세게 쏟아졌다. 작은 조명등만 하나 켠 채 책과 일기장을 펼쳤다. 내일도 종일 비가 내린다는 소식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책을 펼치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느슨해졌다. 낯선 동네에서 읽고 쓰는 시간에 빗소리는 오히려 작은 호사처럼 느껴졌다.

    예보는 오차가 없었다. 다음 날은 정말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우리는 할 수 있는대로 마을 주변과 박물관을 산책하고, 지대가 낮은 발룽가 계곡을 걷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아빠가 숙소 욕조에서 작은 스파를 즐기시는 동안 나는 다시 일기장을 꺼냈다. 하루 동안 아빠와 나눈 대화를 천천히 떠올리다가, 마지막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비가 오든 말든 아빠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돌로미티에 머무는 마지막 날,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오히려 전날 내린 비 덕분에 산 위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여름 위로 난데 없는 겨울이 한 겹 덮인 것이다. 우리는 하루종일 걷고 싶은 만큼 실컷 걸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 먹기 전, 아빠는 잠시 낮잠을 주무셨고 나는 샤워를 했다. 젖은 머리를 말리며 발코니 테이블에 앉아 일기를 쓰고 책을 읽었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햇살과 바람, 그리고 새소리만으로도 충분해서 음악은 따로 틀지 않았다. 무료 여행 안내서를 이리저리 잘라 콜라주를 만들며 느린 오후를 보냈다.

    어떤 상황에서든 일기는 내게 허락된 시간을 풍부하게 만든다. 매번 그저 하루를 어떻게 겨우 마칠 수 있었는지를 기록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펼쳐 보면 그 하루는 인생이라는 큰 풍경 속에서 다른 모습으로 읽힌다.

    아빠는 한 달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이 글을 쓰며 돌로미티에서 쓴 일기를 다시 펼쳐 보았다. 그곳에서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 자체가 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맑은 날뿐만 아니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에도, 엄마를 떠나보내던 날에도,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를 건너던 시간에도 기적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경계가 너무 희미해서 알아보지 못했던 기적들.

    오늘도 절망과 기쁨을 일기에 담는다. 언젠가 다시 이 페이지를 펼쳤을 때 오늘이라는 하루 역시 기적처럼 아름다운 때였다는 사실을 미래의 내가 발견할 수 있도록. 돌아보면, 그 시간을 살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경이롭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기적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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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을 고르는 일

    숨을 고르는 일

    “일기를 왜 써요?”

    어디를 가든 일기장을 챙겨 다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곧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 질문은 나에게 ‘숨은 왜 쉬어? 밥은 왜 먹어?’ 하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삼십 년 넘게 일기장을 채워 가고 있다. 어느새 긴 세월이 쌓였고, 일기 쓰기는 걸음걸이처럼 무의식적인 오랜 습관이 되었다.

    다섯 살 때 처음 쓴 일기는 그림 일기였다. 무엇을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하루를 몇 줄의 문장과 서툰 그림으로 남기면 그걸로 충분했다. 한 권의 스케치북이 채워질 때마다 작은 성취감도 느꼈다. 시간이 흐르자 그림은 점점 줄고 글이 많아졌다. 스케치북은 노트가 되었고, 학생이 된 뒤에는 하루의 일정이 언제나 일기의 첫머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분량이 아니라, 기록하는 대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루에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그 하루를 지나며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을 쓰기 시작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를 파고 들어가면 한 페이지로도 부족한 날이 있었다.

    일기가 길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스무 살 무렵부터는 삶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의 나는 왜 이런 상태인지 이해하고 싶을 때마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고, 쩍쩍 갈라진 땅에 내린 단비 같은 문장을 일기장으로 옮겨 적었다.

    그런 문장을 만나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옮긴 문장 곁에는 내 생각이 덧붙여졌다. 하루의 기록은 조금씩, 삶과 대화하는 기록으로 바뀌어 갔다. 글로 적고 나면 비로소 숨이 조금 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쉽게 밖으로 꺼낼 수 없던 생각과 감정은 종이 위에서 형태를 갖춘다. 책에서 만난 문장과 부딪히고, 내 생각과 뒤섞이며 조금씩 맑아진다. 쏟아내듯 쓰고 나면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숨이 여백처럼 남는다. 그렇게 일기는 자연스럽게 산소호흡기가 되었다.

    숨이 막힐 때마다 내가 다시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도록 곁에서 호흡을 가다듬게 해주는 존재. 누군가 왜 그렇게 오래 일기를 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다만 온전히 숨을 쉬며 살기 위해서.

    일기 쓰기는 오로지 노트와 펜만 있으면 누릴 수 있는 야생의 정원이다. 제멋대로 자라나는 풀나무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곳. 처음 보는 꽃이 피기도 하고, 잡초만 무성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 이름 모를 벌레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순간을 담아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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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연을 맞이할 준비

    우연을 맞이할 준비

    보부상, 당나귀. 가방이 하도 무거워서 하나씩 붙기 시작한 별명이다. 들고 다니는 화장품은 없지만 일기장과 필기도구, 카메라, 책은 필수로 챙긴다. 렌즈까지 여러 개 넣다 보면 숄더백으로는 감당하기가 조금 버거울 정도로 무거워진다. 가방에 망치 넣어둔 거 아니냐는 오해가 생길 만도. 그런 세월이 15년 정도 쌓이다 보니 어깨와 척추도 그 무게를 닮아 갔다.

    나도 이렇게 무거운 가방이 달갑지 않다. 많이 걸어야 하는 날이나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든 무더운 날에는 이 가방이 스스로 짊어지는 십자가가 된다. 그러나 15년을 겪으면서 알게 된 건, 필요한 순간 소지하고 있지 않으면 속이 상할 정도로 아쉬운 물건이라는 것. ‘언제 어떤 순간이 펼쳐질지 모른다’는 게 내 삶을 훑는 거대한 진리가 되었다.

    물론 모든 기록 도구를 완벽하게 가지고 다닐 수는 없다. 대신 종목은 줄일 수 없어도 각 종목별 무게는 줄여 보고자 노력했다. 그날의 목적에 따라 내용물의 조합도 달라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요한 작업을 할 때는 후지필름 X-Pro2와 렌즈들을, 일상 생활 중에는 캐논 V1을, 스포츠에 집중하는 날에는 작고 가벼운 무적의 디지털카메라 올림푸스 TG-830을 챙기는 식이다.

    토요일 오전. 6월 내내 타지 못했던 자전거를 오랜만에 타고 나가서 강에서 수영을 하고 오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점점 무거워지는 가방이 문제였다. 마르코는 나와는 정반대로 간단히, 가볍게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뭘 빼놓고 가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처음 한국에서 마르코를 만났을 때 그의 자전거 옆에 주렁주렁 걸려 있던 가방들이 생각났다. 한국과 일본을 누볐던 가방이 옷장 속에서 가만히 놀고만 있었다.

    챙기던 짐을 통째로 자전거 가방에 넣고 차고로 내려갔다. 자전거 가방을 달기 위해 뒷바퀴 위에 랙을 설치했다. 가방은 꽤 묵직했는데 시범 운행을 했을 때 운전에 불편함은 없었다. 오랜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 같았다. 옛날 사람들이 처음 낙타를 길들여 짐을 등에 올렸을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필요한 물품을 거의 다 챙겼는데도 어깨와 등은 시원한 바람으로 가득하다. 운전석에 앉았을 때 조수석에 가방을 던져 놓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동이다.

    도나우강에 도착해 자전거 가방에서 야외용 매트와 일기장, 필기도구, 책을 꺼냈다. 심지어 마르코가 읽을 책까지 다 넣고 이제 어디든 움직일 수 있다. 수영을 한 후 매트에 누워 도란도란 독서 시간을 가지다가 일어나 앉아 일기를 마저 썼다. 기록하는 삶을 축소하지 않고 온전히 누릴 방안이 마련되어 무척 행복하다. 자전거 가방 하나가 꽤 많은 것을 가볍게 만들었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기록을 포기하기보다 기록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든 만들어 가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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