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왜 써요?”
어디를 가든 일기장을 챙겨 다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처음에는 곧바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 질문은 나에게 ‘숨은 왜 쉬어? 밥은 왜 먹어?’ 하고 묻는 것과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삼십 년 넘게 일기장을 채워 가고 있다. 어느새 긴 세월이 쌓였고, 일기 쓰기는 걸음걸이처럼 무의식적인 오랜 습관이 되었다.
다섯 살 때 처음 쓴 일기는 그림 일기였다. 무엇을 했는지, 어디를 갔는지, 누구와 놀았는지. 하루를 몇 줄의 문장과 서툰 그림으로 남기면 그걸로 충분했다. 한 권의 스케치북이 채워질 때마다 작은 성취감도 느꼈다. 시간이 흐르자 그림은 점점 줄고 글이 많아졌다. 스케치북은 노트가 되었고, 학생이 된 뒤에는 하루의 일정이 언제나 일기의 첫머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분량이 아니라, 기록하는 대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루에 있었던 일뿐만 아니라 그 하루를 지나며 마음속에서 일어난 일을 쓰기 시작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무엇이 나를 흔들었는지를 파고 들어가면 한 페이지로도 부족한 날이 있었다.
일기가 길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스무 살 무렵부터는 삶에 대한 질문이 많아졌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의 나는 왜 이런 상태인지 이해하고 싶을 때마다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기를 바라며 책을 읽었고, 쩍쩍 갈라진 땅에 내린 단비 같은 문장을 일기장으로 옮겨 적었다.
그런 문장을 만나면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옮긴 문장 곁에는 내 생각이 덧붙여졌다. 하루의 기록은 조금씩, 삶과 대화하는 기록으로 바뀌어 갔다. 글로 적고 나면 비로소 숨이 조금 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쉽게 밖으로 꺼낼 수 없던 생각과 감정은 종이 위에서 형태를 갖춘다. 책에서 만난 문장과 부딪히고, 내 생각과 뒤섞이며 조금씩 맑아진다. 쏟아내듯 쓰고 나면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갈 숨이 여백처럼 남는다. 그렇게 일기는 자연스럽게 산소호흡기가 되었다.
숨이 막힐 때마다 내가 다시 스스로 숨을 쉴 수 있도록 곁에서 호흡을 가다듬게 해주는 존재. 누군가 왜 그렇게 오래 일기를 쓰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이렇게 답할 것이다. 다만 온전히 숨을 쉬며 살기 위해서.
일기 쓰기는 오로지 노트와 펜만 있으면 누릴 수 있는 야생의 정원이다. 제멋대로 자라나는 풀나무들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곳. 처음 보는 꽃이 피기도 하고, 잡초만 무성할 때가 있는가 하면, 어디선가 나타난 이름 모를 벌레를 가만히 지켜보기도 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가장 편안한 공간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그 정원을 천천히 거닐며 순간을 담아내려고 한다.
*다른 언어로 읽기:
*다음 글: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