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주로를 떠난 비행기가 목적지에서 돌풍으로 인해 회항한다. 여러 번 착륙을 시도하다가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하늘에서 1년 동안 떠 있는 상황. 극단적으로 비유해 보면 내 처지가 이 비행기와 비슷했을 것 같다.
이주를 결심하고 실행하는 일은 연극의 무대 디자인을 지푸라기 하나까지 모조리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에서 독일로, 태산 같은 인생을 9,000km 옮기는 동안 일상도 공중에 완전히 붕 떠 있었다. 여름과 겨울, 두 나라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는데, 예상치 못한 엄마의 폐렴 악화와 믿을 수 없는 장례식까지 ⎯ 그렇게 혼란스럽게 흘러내리는 정신을 간신히 붙들고 어느새 여름을 맞았다.
작년 7월, 독일에 입국해 결혼식을 올렸다. 11월에는 한국 결혼식,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는 엄마를 잃어가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고, 3월에 다시 독일로 돌아와 이곳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해 나갔다. 최근 아빠의 첫 독일 한 달 방문이 끝났고, 6월의 마지막 주를 지독한 폭염과 함께 보냈다. 그러고 나니 한 해가 지나 다시 7월이 찾아왔다.
정착을 강력히 원했지만, 마음을 붙잡고 무언가로 파고드는 게 쉽지 않았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 쓴 일기에는 항상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중대한 원인으로 등장했다. 내 자신 속으로 들어가 해답을 찾고 나오기를 어찌나 갈망했는지. 그게 1년 정도 쌓이자 불안과 불만이 횃불처럼 마음을 태웠다. 열망이 분열되기 전에 영혼과 무의식이 바라는 일을 해 줄 차례가 온 것이다. 타자기 위로 공중뿌리 같은 손가락을 내렸다. 책상 앞에서도 축제 못지않게 열기 있는 생활을 펼칠 수 있다.
식물이 뿌리를 내리려면 우선 토양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뿌리는 안정감이다. 그 반듯한 기분은 체력과 반복적인 일에서 나오고, 생활 체계나 일의 구조가 든든한 대지가 되어준다. 그렇게 짜여진 골조 위에서 여러 사건과 우연들로 인해 인생이 자유로운 형상을 만들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독일과 한국에, 혹은 기타 다른 곳에도 모두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어떤 일을 하게 되든지 ‘안정’과 ‘이동’을 최대한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다. 뿌리를 내린 땅의 일부와 함께 자신을 통째로 움직일 수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
새로운 인생이 산뜻한 신체를 드러낸다. ‘당신은 누구야? 어떤 사람이야?’ 이곳에서 만나는 이들은 끊임없이 나에게 묻는다. 오랫동안 너무 당연하게 살아와서 설명조차 필요하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이 낯선 세계에서는 구석구석 초기화되어 있다.
어떤 표정을 지을지, 어떤 옷을 걸칠지, 어떤 역할을 할지, 모든 것은 나의 자유. 정체성을 원하는 대로 다시 설정하거나 더욱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압도적인 빈칸 앞에서 나는 어떤 성질로 가득 채워지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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