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_3

독일 오버팔츠 자전거 여행 Day 3,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만난 3억 년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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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트나프탈, 팔켄베르크, 티르셴로이트, 나프 캠핑장까지 67.66km

오전 9시, 호텔 조식을 먹기 전에 짐 정리를 모두 마쳤습니다. 전날 욕실에 널어 둔 텐트와 빨래도 산뜻하게 잘 말라 있었어요. 15유로짜리 조식 뷔페도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것만 같았던 아침이었지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 안쪽에서 싸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래도 어제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달린 것이 무리였던 모양입니다. 만약 편도가 붓는다면 열이 날 테고, 본격적인 몸살 모드가 시작될 것 같았습니다.

따뜻한 차로 목을 달래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여기서 여정을 멈출 것인가, 계속 달릴 것인가.

마르코가 몸이 안 좋으면 집으로 돌아가도 괜찮으니 무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여행을 끝내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더라고요. 일단 가까운 약국에서 약을 구입하고, 기차역이 있는 마을까지 이동한 다음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약국에서 네오안긴(neo-angin)과 이슬라 카시스(isla cassis) 목캔디, 가글약을 구매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33유로의 지출이 조금 속상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몸 상태가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기차역이 있는 빈디셰셴바흐(Windischeschenbach)에 도착했습니다. 우리가 계획한 경로에서는 이곳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었습니다. 더 북쪽으로 들어가면 몸이 나빠져도 쉽게 돌아오기 어렵게 되지요.

저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제 몸을 좀 더 믿어보기로요.

발트나프탈, 북부 오버팔츠의 숲과 계곡

약 3억 년 전, 지금의 바이에른 북동부와 체코 서부 일대에서는 거대한 지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대륙이 충돌하고 산맥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뜨거운 마그마가 지하 깊은 곳으로 밀려 들어갔습니다. 마그마는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식었고, 단단한 화강암이 되었습니다.

이후 수억 년 동안 비와 바람, 강물이 지표면을 깎아내렸습니다. 땅속 깊이 묻혀 있던 화강암도 숨겨 왔던 모습을 드러냈지요. 그 사이를 흐르던 발트나프강(Waldnaab)은 바위를 침식하며 계곡을 만들어 갔습니다. 물은 거친 바위 표면을 둥글게 다듬었고, 오랜 시간 흐르며 지금의 풍경을 완성했습니다.

발트나프탈(Waldnaabtal) 자연보호구역으로 들어서자,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빽빽하게 자란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듬성듬성 내려앉아 어두운 숲을 은은하게 밝히고 있었습니다. 강물은 커다란 바위 사이를 돌아 흐르고, 이끼가 낀 돌들은 침묵 속에 오랜 시간을 품고 있었어요.

공룡이 등장하기도 전에 만들어진 화강암 사이를 자전거로 지나고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아침에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여행을 포기했다면오늘 이 숲을 만나지 못했겠지요. 숲길을 따라 약 7km를 달리는 동안 몇 번이나 자전거를 멈추었습니다. 30분 정도라도 숲 어딘가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될 장소를 하나 고르라면, 아마도 이 숲일 것 같습니다.

화강암 위에 세워진 성, 팔켄베르크

발트나프탈의 물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팔켄베르크(Falkenberg)라는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마을 한가운데 거대한 화강암 바위가 솟아 있고, 그 위에 오래된 성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바로 팔켄베르크 성(Burg Falkenberg)입니다. 11세기 무렵부터 역사가 이어져오고 있지요.

마실 물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자전거를 세웠습니다. 성 내부도 궁금했기에 입구 쪽으로 다가가 안내판을 살펴보았지요. 놀랍게도 이 오래된 성은 오늘날 공연장과 전시장, 행사 공간, 숙박시설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외부인 둘이 입구를 기웃거리고 있으니 관리인 아저씨가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물병에 수돗물을 채워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더니 친절하게 맞은편 건물로 안내해주셨습니다.

1990년부터 지역 주민들이 ‘포럼 팔켄베르크(Forum Falkenberg – Freunde der Burg e.V.)‘라는 비영리 단체를 조직해 활동해 성과 관련된 문화 활동을 이어 왔다고 합니다.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친 성은 2015년에 다시 문을 열었고, 다양한 공연과 전시, 행사가 열리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약 3,700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 팔켄베르크 성을 통해 외부와 연결되고 있었지요. 오래된 돌벽 안에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성에서 머무는 하룻밤은 어떤 느낌일까요? 현재 팔켄베르크 성에는 구조와 전망이 서로 다른 여덟 개의 객실이 마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행 중 조금 특별한 숙소를 찾는다면 팔켄베르크 성 호텔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 개의 연못이 있는 땅, 티르셴로이트

다시 자전거에 올라 티르셴로이트(Tirschenreuth) 방향으로 달렸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멀리서 거대한 구조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철골이 길게 뻗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늘 사다리’라는 뜻의 히멜스라이터(Himmelsleiter)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는데, 올라가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서 자전거를 돌렸습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철제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갔습니다. 발밑의 땅이 훤히 보이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지요. 마침내 20미터 높이에 있는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발밑을 보지 않으려 애쓰며 사방으로 펼쳐진 연못지대를 떨리는 심장으로 바라보았지요.

위에서 바라본 풍경은 자전거를 타며 보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티르셴로이트 일대는 독일에서도 오랜 양어업 전통을 지닌 지역입니다. 중세부터 수도원과 지역 주민들이 연못을 조성해 물고기를 길렀고, 특히 잉어 양식이 발달했다고 해요. 육식을 제한하던 종교적 관습도 민물고기 양식이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티르셴로이트에는 약 4,700개의 크고 작은 양어 연못이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이 ‘천 개의 연못이 있는 땅(Land der 1000 Teiche)’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유이지요. 우리가 달렸던 비치날반 자전거길(Vizinalbahn-Radweg)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과거 철도가 지나던 구간을 활용해 만든 자전거길이었거든요. 히멜스라이터의 길게 뻗은 철골 구조를 바라보니 오래된 기찻길이 땅에서 솟아올라 전망대로 변신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계획보다 조금 더 멀리

원래 계획대로라면 티르셴로이트 근처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아침의 목 통증이 한결 가라앉았고, 몸 상태도 예상보다 괜찮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발트나프강 발원지 근처까지 최대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찾아낸 곳이 체코 국경 근처, 배르나우(Bärnau) 지역의 작은 마을 나프(Naab)에 있는 캠핑장이었습니다. 당일 예약이라 자리가 없을수도 있었지만, 일단 메시지를 보내 보았습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습니다. 오늘 머물고 가도 괜찮다고요. 저녁에는 캠프파이어를 할 예정이니 그릴에 구워먹을 음식을 가져오라는 친절한 안내도 덧붙어 있었습니다.

토이펠호프 나프 캠핑장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슈퍼마켓 디스카(diska)에 들러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음식들을 구매했습니다. 나프는 체코 국경에서 멀지 않은 작은 농촌 마을입니다. 그곳에 그뢰들 가족이 운영하는 작은 캠핑장 토이펠호프 나프(Teufelhof Naab)가 있습니다.

캠핑장에 도착하자 크리스티안과 카트린, 그리고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잔디밭 어디든 마음에 드는 곳에 텐트를 쳐도 된다는 말에 캠핑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우리는 나무 사이로 목초지가 보이는 자리를 골랐습니다. 이렇게 자전거를 세우고 텐트를 설치할 때마다 긴 주행이 끝났다는 실감이 납니다.

캠핑장 이름도 특이했습니다. 독일어로 Teufel은 악마, Hof는 농장이나 안뜰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토이펠호프는 ‘악마의 안뜰’쯤 되는 이름이지요.

실제로 근처 숲에는 악마와 관련된 바위가 있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악마는 숲속 바위에 앉아 사람들에게 돈과 행운을 주는 대신 영혼을 사들이려 했다고 해요. 악마가 떠난 뒤에도 바위에는 앉았던 자리와 발굽 모양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녁에는 캠핑장 가족과 손님들이 모두 모여 불을 피웠습니다. 손님 중 한 사람은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구웠고, 우리는 나뭇가지를 깎아 만든 꼬챙이에 소시지와 파프리카를 끼워 불 위에 올렸습니다. 적당히 익은 재료들을 빵 사이에 넣어 먹으니 아주 훌륭한 저녁 식사가 되었지요. 캠핑장 냉장고에는 맥주와 여러 음료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마신 만큼 적당한 금액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지요. 장작 타는 냄새를 맡으며 마시는 시원한 맥주도 일품이었습니다.

이야기가 깊어가는 밤, 어느새 뿌연 안개가 캠핑장을 뒤덮었습니다. 아침에는 여행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체코 국경 가까운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오늘 하루 누적 상승고도는 822m였습니다.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오르막을 자전거로 처음 올라본 날이었지요. 힘들다고 무작정 포기하지 않고 상태를 잘 살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마침내 이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발트나프강의 발원지를 찾아갈 예정입니다. 사흘 동안 거슬러 올라온 물길의 시작 지점은 어떻게 생겼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