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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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 엄마를 하늘로 떠나보냈다.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그토록 애가 끓을지 미처 몰랐던, 태어나서 겪은 가장 큰 슬픔이었다. 단순히 헤어지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영영’ 잃어버리는 일. 뼈와 재로 변한 엄마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절대적인 작별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반드시 몇 번은 거쳐야 하는 숙명이다. 나에게는 그 시작이 조금은 빨리 다가온 것일 뿐. 누구나 겪는 사건이다. 그렇게 다독이며 보편적인 우주 시간 속에 자신을 데려다 놓았다. 슬픔 안에서 숨이 막히지 않기 위해.

원래 계획했던 독일행 티켓을 출발 이틀 전 취소했다. 엄마가 중환자실로 들어간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그 후로 엄마가 하늘로 떠나기 전까지 두 달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기록을 이어 나갔다. 이성을 놓치지 않으려는 발악이었다. 일기장에는 요동치는 불안과 슬픔을 실시간으로 털어냈다. 내 일기장에 쓰인 가장 절박한 20페이지였다. 익명으로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엄마의 상태 기록을 상세히 남겼다. 엄마에게 가능한 모든 치료를 다 시도해 보았다. 그녀의 폐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추적해 나가면서,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이 되어 기도와 염원에 매달렸다.

중간 상태. 떠난 것도 머문 것도 아닌. 그때 나는 폐쇄된 공항에서 봉쇄가 풀리는 소식을 기다리는 여행자가 된 것 같았다. 엄마는 한 달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다.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일단은 독일로 돌아가 기본적인 생활 방편을 마련해 놓고 긴급 상황에 한국으로 다시 오기로 했다.

한 달. 독일 생활에 조금씩 적응할 무렵 ,한국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아버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서늘한 심장으로 그다음 날 출발하는 비행기를 예약했다. 레겐스부르크에서 뮌헨으로, 인천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곧장 병원의 중환자실로 가서 엄마를 보았다. 오후 11시 임종 면회. 참담한 밤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소식이 들려올지 모를 날들이 지나갔다. 시차 때문에 시간 감각은 더욱 상실됐다. 저 너머 어딘가로 멀어지는 엄마를, 밀물이 들어오는 어지러운 갯벌 위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는 것 같았다.

엄마의 마지막 시간으로 온 가족이 함께 저물어가는 동안, 새로운 사진 콜라주 작업 시리즈를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예술이 나의 찢어진 마음을 치유해 주었다. 여러 상징들을 배치하며 뚫린 구멍으로 바람이 빠져나가듯 작업에 몰입했다. 함께했던 우리가 반짝이며 영원하기를, 엄마의 영혼이 하늘로 자유로이 날아오르기를 바라면서. 신앙심이 깊었던 엄마는 아름다운 장례미사 안에서 생을 마치셨다.

제대로 된 대화를 한 번도 나누지 못한 채 엄마를 보내야 했다. 혹시 못 다한 말이 있으면 꿈에 나와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직 엄마를 보지는 못했다. 하늘에서 외할머니를 만나 그동안 못 먹었던 음식 실컷 먹으며 잘 지내고 계실 거라 생각한다. 일상을 살아낼수록 내 안에 엄마의 일부가 함께 존재한다는 걸 실감한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살기보다는, 내가 바라는 이상향으로 부지런히 움직이고 싶다. 엄마가 45년간 9일 주기로 묵주기도를 이어온 것처럼, 그러한 종류의 꾸준함을 삶에서 발현하는 것. 그러다 보면 한번쯤 꿈에 나오셔서 “잘하고 있네, 내 딸.” 하시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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